소통을 위한 건축, 관계성을 강화시키는 건축

소통을 위한 건축, 관계성을 강화시키는 건축

국립한경대학교 디자인건축융합학부 이을규 교수

건물이 아닌 건축을 설계하자

요즈음 방송에서는 주거와 관련된 방송이 많이 있다. 이제까지는 부동산으로서의 주거공간 즉 아파트 가격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으나 최근에는 부동산부분의 화제와 더불어 주거공간의 설계에 대한 내용이 확연히 많아 졌다. 우리는 부동산의 가치로서의 ‘집’과 우리의 생활공간의 가치로서의 ‘집’을 혼돈하기 쉽다. 즉 건축학도가 되면 처음 구분시키는 것이 ‘Building’과 ‘Architecture’의 차이를 설명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House’와 ‘Home’을 구분하여 사용할 필요성이 있다. 즉 건축을 공부했으면 다들 알고 있겠지만 경제적이고 물리적인 존재로써의 집은 ‘House’라고 하고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실존적인 공간을 ‘Home’이라고 한다.

고건축 건축개념을 현대건축에 적용하자

우리 조상은 한옥에서 그런 묘안을 곳곳에 보여주고 있다. 좁은 면적의 집에서 그리 대단한 설계개념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House’가 아닌 ‘Home’을 짓고자 노력했다. 나는 그런 건축적인 혜안에 무릎을 치며 100년전 건축사인 목수의 건축개념을 한옥에서 찾아내고는 존경을 보내곤 한다.

그중에서도 유교사상이 강했던 조선시대의 한옥건축의 기본 개념은 남녀7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남자와 여자는 7세 이후로는 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이라는 이념 아래 남녀공간의 엄격한 공간분리를 주거공간에서도 적용했다. 큰 주택의 경우 별채로 구성되어 있는 주택은 낮 동안은 부인은 안채 안방에서 남편과 아들은 바깥채인 사랑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나, 사랑채와 안방을 오갈 수 있는 작은 문을 두어 수시로 다닐 수 있는 비밀통로를 만들거나, 그런 통로가 없는 경우는 사랑방 뒤쪽 창문을 두어 필요에 따라서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사랑방과 안방이 같은 건물에 있을 경우는 문을 열면 언제든지 서로 볼 수 있으며 소통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또한 자연을 바라보면 창의적인 생각에 잠기는 장소를 집안에서도 꼭 만들려고 했다. 자연과의 소통이요, 힐링의 공간이기도 한 정자를 양반집에서는 꼭 만들려고 했다. 그 것이 사랑방앞의 누마루를 형태가 되든 별채로 만들든 반드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사방으로 개방된 별채 형태의 파빌리온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네모난 수공간을 만들며 천원지방(天圓地方)과 같은 음양의 원리나 그 당시의 세계관을 건축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런 철학적인 개념을 건축으로 실현시키는 능력은 우리 세대에는 많이 선조의 혜안을 배워서 전통을 복고하는 것이 아닌 계승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양반가 사랑채(사진=이을규)
양반가 사랑채(사진=이을규)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툇마루(사진=이을규)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툇마루(사진=이을규)
창호로 연결된 방(사진=이을규)
창호로 연결된 방(사진=이을규)
봉화 청암정 누정(사진=이을규)
봉화 청암정 누정(사진=이을규)
담양소용대 누정(사진=이을규)
담양소용대 누정(사진=이을규)
소쇄원 광풍각(사진=이을규)
소쇄원 광풍각(사진=이을규)

그리고 그 개념을 지금의 현대건축에 적용하면 더욱 한국적인 건축공간이 될 것 같다. 지금도 저자는 선조의 건축개념을 배우고 계승시키고자 하지만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러면 거주하는 집을 설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설계를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거주하기 보다는 집을 지어서 다른 사람에게 팔려고 한다면 어떤 관점에서 설계를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끔씩 주택 설계의 계기가 되면 조금이라도 이런 지혜를 현실로 실현시키고자 한다. 나는 자택을 설계할 때 Home을 설계하기 위해서 적잖이 고민했었다. 혼자 있고자 하는 자녀와 부모가 오래 체재하는 거실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공간을 연결할까. 그리고 부인의 공간과 남편의 공간은 어떤 식으로 분리하듯 연결할 것인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가족 간의 관계성을 최우선하면서 설계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주택의 경우를 보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집은 가족 간의 관계성을 더욱 가깝게 하는 공간, 즉 가족의 사랑을 키워주는 공간을 생각하며 설계할 것인가? 아니면 방을 몇 개 구성하고, 부엌과 거실 등을 어느 정도 크기로 할 것인가를 주로 고민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자.

우리 조상의 창문과 문들은 종이로 되어 있어서 자녀 방에 밤 늦도록 불이 켜져있는지 안방에서 보면 다 알 수 있었다. 그럼 부모는 밤늦도록 무얼 했는지 자녀에게 물어보고 고민이 있는지, 일이 바쁜지 등의 관심사를 자녀와 얘기를 조심스럽게 물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가족 간의 서로의 고민이나 최근 동향을 서로 이야기함으로써 가족 간의 정이 더욱 깊어지게 하는 장치로써의 건축을 실현할 수 있었다. 지금의 많은 주택들은 가족 간의 사랑을 키워주는 구조를 그다지 고민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부모방, 자녀방 할 것 없이 다 닫혀있다. 자녀들과 서로 이야기할 기회도 없다. 자녀들은 자기방에서 스마트폰만 하고 있다. 방에서 불도 세어 나오지 않아서 자녀가 밤 늦도록 공부하고 있는지 사춘기 고민에 빠져 잠 못 들고 있는지 문을 닫으면 알 도리도 없다.

창문이 있는 도어(사진=이을규)
창문이 있는 도어(사진=이을규)
아래층과 소통할 수 있는 창문(사진=이을규)
아래층과 소통할 수 있는 창문(사진=이을규)
아래층과 소통할 수 있는 창문(사진=이을규)
아래층과 소통할 수 있는 창문(사진=이을규)

자녀가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더욱 대화의 시간은 없어진다. 설령 자기 방에서 자기 일을 하더라도 늘 부모와 소통하는 구조로 집이 설계된다면 더욱 부모와 자녀는 더욱 더 서로의 생각을 잘 알게 되고 서로 더욱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공감능력이 가족의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이 시대는 자녀의 생각과 부모의 의사소통의 결여가 결국 가족 사랑의 결핍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건축공간은 이러한 소통을 이어주는 것을 방의 면적보다 더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통을 위한 불빛, 소통을 위한 창, 소통을 위한 1, 2층을 VOID공간으로 시선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의 공간설계가 물리적인 ‘House’가 아닌 ‘Home’을 설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소통을 위한 학교공간

학교도 학생과 학생 그리고 학생과 교사의 자연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런 공간개념을 우선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학생이 많아도 제자는 없고, 교사는 많아도 스승은 없다는 말이 있다. 졸업하면 한 번 쯤 찾아오는 학생이 드물고, 졸업하면 찾아뵙고 싶은 교사나 교수님은 드물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건 재학시절 학생과 교사사이의 친밀감이 적어서가 아닐까. 수업시간이외의 시간에 개인적인 얘기나 고민을 심도있게 얘기할 기회가 적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본인이 재직하는 대학교의 교수실에 복도로 창을 설치하고, 학생들이 작업하는 설계실에도 복도에 커다란 창문을 설치했다. 그래서 저녁 늦게라도 교수님이 연구실에 있는지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어서 언제 라도 찾아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도어에 쪽창을 설치하였고 복도 측에도 고창을 설치하여 연구실안의 교수의 존재를 알리고, 학생들의 과제나 공모전 설계시 늦게까지 작업을 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복도 측에 커다란 창문을 설치하여 늘 학생과 교수의 소통과 만남을 촉진시키는 계기를 만드는 건축적인 장치를 만든 결과 학생들과 교수, 학생과 학생과의 소통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학과 동급생이 친구가 되고, 학생이 제자가 되고, 교수가 비로소 스승이 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복도측에 창이 있는 학교(사진=이을규)
복도측에 창이 있는 학교(사진=이을규)
복도측에 창이 있는 학교(사진=이을규)
복도측에 창이 있는 학교(사진=이을규)
복도측에 창이 없는 학교(사진=이을규)
복도측에 창이 없는 학교(사진=이을규)

초중고 학교도 이러한 소통을 위한 건축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의 사진은 학교 교실이 복도측의 벽을 없앤 오픈스쿨의 학교인데 교실영역과 복도측으로 확장된 보조학습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날 진도를 다 나간 학생들이 별도로 모여서 다른 학습기구를 가지고 자기주도적으로 학습을 하는 공간을 설계한 사례이다. 같은 반 학생들이 같은 시간 공부하고 있으면서 서로 다른 교재를 가지고 동시에 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면서 서로 다른 공부를 하는 사례이다. 이렇듯 우열반으로 별도로 분리하여 공부하지 않고 교실 근처에서 서로 다른 공부를 하는 이런 교실의 기본 이념은 교우들의 동질감을 전제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이다. 서로 수업진도가 다르더라도 가능한 한 우리는 같은 반 친구라는 사실을 늘 인식할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하였다는 것이다.

오픈스쿨(사진=이을규)
오픈스쿨(사진=이을규)
오픈스쿨(사진=이을규)
오픈스쿨(사진=이을규)
발상을 위한 교실(사진=이을규)
발상을 위한 교실(사진=이을규)
발상을 위한 교실(사진=이을규)
발상을 위한 교실(사진=이을규)
발상을 위한 교실(사진=이을규)
발상을 위한 교실(사진=이을규)

국내에서도 친구와의 소통공간을 마련한 학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수업내용도 친구와 협력해서 하는 과제를 하는 교실의 자유로운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실형태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늘 줄이 맞춰진 책상 앞에서 창의적인 발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학급과 학급사이의 소통을 너머 이제는 학교와 거리 혹은 지역사회와의 시선적인 소통도 해 봄직하다.

거리에 열려진 교실 (사진=이을규)
거리에 열려진 교실(사진=이을규)

공공건축물과 시민의 소통방법

소통을 더 확대하여 생각하면 공공시설의 사용과 심리적인 부담감을 없애기 위해서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거리에 훤하게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그래야만 일반주민들이 나도 이용해봐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반 상업시설에서는 거리에 홍보차원에서 실내이용자의 모습을 잘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공공시설은 건물 내 이용모습을 잘 안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공공시설과 주민들과의 무언의 소통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활동모습이 잘 보이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용무로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에도 같은 건물 다른 실에서 활동하는 이용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공공건물의 복도측으로 창문을 프로그램 진행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작게 설치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거리에서 쉽게 내부 이용하는 사람을 볼 수 있도록 넓은 창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복도에서도 실내부가 조금 보일 수 있도록 벽이나 도어에 작은 창문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 보다 쉽게 공공건축물과 주민이 시선적인 소통할 수 있다.

창문이 있는 도어(사진=이을규)
창문이 있는 도어(사진=이을규)
실내가 보이는 창문(사진=이을규)
실내가 보이는 창문(사진=이을규)
실내가 보이는 개방적인 외관(사진=이을규)
실내가 보이는 개방적인 외관(사진=이을규)

외부의 빛이나 시선을 차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건축물인 미술관도 지역의 소통의 장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개방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 21세기미술관이다. 저자는 이 건물이 이런 건축계획 측면에서 폐쇄적인 건물을 개방적이고 지역과 소통하려는 건물로 설계하려고 한 건축개념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점에 건축설계의 대단한 발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자가 보이는 미술관(사진=이을규)
이용자가 보이는 미술관(사진=이을규)
이용자가 보이는 미술관(사진=이을규)
이용자가 보이는 미술관(사진=이을규)

그리고 아래 윗층을 이어주는 VOID공간은 상업건축물에서 많이 사용하는 건축적인 수법이지만 공공건축물에서도 사용하면 더욱 이용자간의 심리적인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소리없이 시선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건축적인 소통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자가 보이는 도서관(사진=이을규)
이용자가 보이는 도서관(사진=이을규)

이 시대는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시대인 것 같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스마트폰을 보고 몇 시간이라도 있을 수 있는 그런 1인 주거의 시대가 대세인 시기인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말은 박물관에 가서 박제가 된 지 오래된 것 같다. 그러나 현대인은 늘 고독하고 외롭다. 그래서 SNS에 몇 개씩이나 가입하고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 같다. 온라인의 관계성은 바쁜 일상 중에 그 나름의 역할이 있는 것 같다. 그 반면에 오프라인의 관계성을 원활히 하기 위한 실존적인 건축공간은 인간에게는 아직 필수적인 존재인 것 같다. 오프라인의 관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더욱 예민해진 현대인의 개인적인(private) 영역성을 지키면서 타자와의 관계성을 강화시키는 건축적인 장치가 더욱 요구되는 시기인 것 만큼은 확실하다. 이 예민한 공간디자인을 위해서는 건축설계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지혜는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현대인이 요구하는 소통과 자기만의 공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앞으로 주어진 우리들의 과제하고 생각한다. 한 번 겪어보지 못한 고독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시대. 혼자이지만 고독하지 않는 공간을 설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진지하게 ‘인간(人間)’인 우리 자신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필] 이을규 교수 

•현 국립 한경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교수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동경대 대학원 연구과 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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